나의 이야기

때 이른 벌초와 또 다른 고민

자연치유캠프 2012. 6. 11. 10:16

 

1012년 6월 10일

오늘 와수리에서 주례를 보고,  부랴 부랴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.

긴 시간을  고민하고,  여러분들께 의견을 구하기도 했던 일을 결행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.

 

 

 뻐꾸기도 한없이 울고( 뻐꾸기가 너무 울면 가뭄이 든다고도 함),  오디도 다닥다닥 열어 검게 익어간다.

 

 

 

예초기가 첨 나왔을 때는 조상님의 산소의 잡초를  예초기로 잘라도 되느냐가 고민거리였고,  어머니 살아 계실적에는 낫으로 베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었다.

그러나 불효자인 난 어머님 앞에서 아버님의 산소를 예초기로 깎았다.

 

 

 

오늘의 고민은 조상님들의 산소에 예초기에 더하여,  제초제를 쳐야하느냐 였다.

주변 분들의 다수의 의견은 "제초제를 친다" 였기에,  제초제를 한 통 사고,  제초제 전용약통을 빌려 물까지 담아 왔다.

 

그러나 산소를 올려다보니---,   마음이 흔들려 결국 때이른 예초기 벌초작업만 하게 되었다.

 

 

 

사곡리에 있는 할아버지의 묘.

 

 

 

부모님 바로 위에 있는 할머니의 묘.

 

 

 

 부모님의 묘.

 

 

 

할아버지의 묘 바로 아래에 있는 지인의 묘,  원래는 부부를 모셔서 분봉이 두개였는데, 하나로 다시 조성했나 보다.

모두들 딴 곳으로 이사를 가셔서 산소만 이곳에 있다.

 

 

 

이 묘는 옮겨가고, 한가운데에 소나무 한그루를 심었는데 죽을뚱 말뚱한다.

어른들은 의사소통수단이 열악했어도 오히려 소통이 잘 된것 같다.  소나무 한그루를 심어,  누군지는 모를 이해관계자에게 언제라도 이곳의 묘를 옮겨갔음을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.

 

이렇게 오늘 하루는 결심을 번복한 바보가 되고,  때 이르게 뙤악볕에 예초기로 널다란 산소 3개를 깍느랴 고생했지만 땀을 닦으며,  바라보는 파란 운장리 벌판이 시원하기만 하다.

 

산소는 작고 아담해야  후손이 고생을 적게한다는 것과,  내 죽으면 벌초는 제대로들 하려나 하는 성급한 걱정을 벌초때 마다 하게 한다.   끝.